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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반상에 놓인 돌이-송창식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10.04.18 13:42:46   조회: 7425

반상에 놓인 돌이 네 마음이냐 내 마음이냐
희어서 뉘 뜻이며 검어서 뉘 뜻이냐
(후렴)헤이 헤이 헤이 어울어보자

곱게도 뻗은것이 사랑이냐 미련이냐
몰아쳐 끊은것이 번뇌냐 세속이냐
(후렴)헤이 헤이 헤이 어울어보자

굽이쳐 흐른것이 경락이냐 돌뿌리냐
손끝에 달린것이 흥망이냐 성쇠냐
(후렴)헤이 헤이 헤이 어울어보자

저멀리 하늘가에 불빛이냐 무심이냐
눈감아 가슴속엔 삼매냐 극락이냐
(후렴)헤이 헤이 헤이 어울어보자
(후렴)헤이 헤이 헤이 어울어보자


 



국내 최초의 바둑 가요 <반상에 놓인 돌이>의 가사 가운데 1절이다.

송창식 작사 . 작곡 노래 . 83년 봄 발표됐다.

 

아니, 송창식이 바둑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고?

축이나 제대로 알고 바둑 노래말을 만들었단 말이냐..

 

하지만 그가 바둑에 대해 지니고 있는 애정은 대단했다.

애정만이 아니다. 솜씨도 녹록치 않다.

웬만한 1급들이 가볍게 알고 덤볐다가는 큰코 다칠 정도의 실력 이다.

 

바둑은 그가 젊었던 시절 음악만으론 채울 수 없는,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대한 휴식처였다.
군중 속의 외로움이랄까.

서정적, 외향적 성격으로만 비쳐져 온 송창식은 의외로 사색적이었고 내성적이었다.

 

내면의 허전함이 느껴질 때마다 그는 늘 바둑을 가까이 했다.

그의 음악세계에 깔려있는 한과 정념, 고즈넉하면서도 애틋한 정조가 바둑의 그윽함과 일맥상통함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숱한 히트곡 속에서 이 노래는 대중성과 상업성에 있어 큰 몫을 차지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애당초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 곡에 각별한 애착을 갖는 것은 이 곡을 만들어 부르고 누군가에게 바쳤던, 젊은 날 그의 바둑을 둘러싼 그리운 시절이 농축되었기 때문이다.

 

이곡은 지금은 고인의 된 정창현 7단에게 헌증했다.

정창현 사범.

송창식의 바둑 역정은 그로부터 시작해서 그에 의해 끝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에게 배운 것은 바둑만이 아니었다.

연예인과 바둑인으로 만나 바둑을 밑줄기로 교우했지만 7년 가량 연상인 정창현은 송창식에게 바둑 외에 인생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70년대 초반 관철동 한국기원에 들렀던 송창식은 실로 우연하게 정창현사범을 소개받았다.

호방한 프로기사와 소탈한 대중가수. 둘은 급격히 친해졌다.

정사범은 얼마 뒤 명동에 사조기원이란 바둑집을 차렸고 송창식은 이곳에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한다.

68년 트윈 폴리오로 가수생활을 시작, 인기 절정으로 치달아 눈코 뜰새없이 바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바둑은 당시 그에게 있어 음악 못지 않게 소중한 '일과'였다.

정창현은 송창식을 아주 특별한 애정으로 지도했다.

송창식도 상당한 재질이 있었던 데다 바둑에 몰입해 있었고, '정교수'의 특별지도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그의 바둑실력은 일취월장해갔다.

정사범에게 처음 지도받을 때의 기력은 5, 6급 정도. 이같은 훈련이 시작된 지 단 3개월만에 그는 짱짱한 1급이 됐다.

 

신이 난 정사범은 송창식에게 한국기원을 통해 아마3단증을 정식 인허했다.

아마단의 가치가 크게 인플레된 요즘의 3단과 달리 그 당시의 3단은 아마추어가 딸 수 있는 최고의 경지였으며, 3단증 소지자도 매우 적었다. 지금으로 치면 5단 이상에 해당할 것이다.

 

두 사람은 이 무렵 거의 붙어살다시피 했다.

겹친 출연 때문에 피곤해 좀 쉬고 있을라 치면 '정교수' 는 "아 뭐해, 빨리 나와" 라며 불러내기 일쑤였다.

그들은 바둑을 두다 두다 무료해지면 술집으로 향했다.

마작도, 당구도 정사범을 통해 배웠다.

김인, 조훈현 등 기라성 같은 고수들도 이때 알게 됐다.

 

송창식이 아마3단증을 받고 난 이후 이같은 그들의 즐거운 생활은 1년 남짓 계속됐다.

더 계속될 수가 없었다.

정사범이 타계했기 때문 이었다.

"아마추어도 바둑을 시작했으면 5단까지는 해야한다" 던 정창현.

그가 아직 생존해 있었다면 5단이야 안됐겠느냐는 게 송창식의 반문이다. 그만큼 정창현의 바둑지도 능력은 신뢰할 만했다.

 

서두에 소개한 가요 <반상에 놓인 돌이>는  "바둑 노래나 하나 만들 어 보라" 는 정사범의 권유로 작곡됐다.

때마침 조훈현이 국내 처음으로 9단에 오른 기념으로 이 노래를 조훈현에게 바치겠다고 하자 정 사범도 즐거워했다. 그리고 얼마 안돼 정사범은 세상을 떴고, 이 노래는 정창현에게 바치는 노래로 탈바꿈해 디스크로 출반됐다.

 

송창식은 서봉수와도 어울린 적이 있다.

인기 정상권을 달리던 24세의 가수 송창식과, l8세 나이에 명인에 오른 서봉수의 거래(?)는 바터제였다.

한쪽은 기타를, 한쪽은 바둑을 가르치는 조건.

하지만 송창식은 "내가 손해보는 장사였다" 며 짐짓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다.

정창현이 원리 위주로 지도한데 비해 서봉수는 수 위주로 가르쳐 교육자의 입장에선 전자 쪽이 훨씬 편했다는 이야기.

 

송창식이 바둑을 처음 접한 것은 서울예고 재학시절.

한 반 친구로부터 배웠다. 노트에 그려가면서. 죄다 죽었다.

분한 마음에 귀가 하자마자 6급 정도 두시던 할아버지를 졸라 25점을 접히고 지도를 받았다.

일주일 후 그 친구는 송창식에게 거꾸로 6점을 접혀야 했다.

현재 모 여대 교수로 재직중인 그 친구는 지금까지 수담을 나누는 '평생 라이벌'이다.

 

한창 바둑에 빠져있던 70년대 초 무렵엔 3점이면 세상 어느 프로도 무섭지 않을 만한 기력을 지녔었다.

자니 브러더스란 중창단의 멤버였던 김현진씨라면 당시 프로 입단대회 본선을 넘나들던 강자. 그 조차도 송창식을 2점을 잘 못 접었다.

 

학문적으로 바둑을 배운 까닭에 기풍은 정통파 쪽이다.

장고형은 아니지만 한수 한수에 생각해서 착점하는 스타일.

싸움보다는 '판짜기'를 즐기는 편인데, 상대가 싸움을 강요하면 제아무리 고수라 한들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김동면 6 단 , 유건재 7단 등은 바둑 이전 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

 

한동안 바둑돌을 잡는 횟수가 뜸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바빴기 때문.

또 한가지는 대국 상대들의 승부에 대한 집착에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바둑을 일단 '즐겁기 위해' 두는 자신에 비해 상대들은 열이면 열 모두 지나치게 승부에 매달리는 게 싫다.

승부의 속성이 그런 게 아닐까.

 "그러나 정도가 심하면 추해져요.

인간성까지 의심할 정도가 되면 곤란해요."

 

언제나 애용하는 개량 한복 차림에 특유의 웃음 얼굴로 열창하는 송창식. 이제 단정히 바둑판 앞에 정좌한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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